언론보도

[머니투데이] 나눔은 더 큰 것을 주는 행복 바이러스 (08/10/27)

작성자
scgtalent
작성일
2014-04-05 17:02
조회
998
나눔은 더 큰 것을 주는 행복 바이러스
[머니위크 기획]내 생애 최고의 투자-기부/고영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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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주는 것이 생활이 됐고 그 속에서 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고영 씨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컨설턴트다. 그에게도 마이너스 통장이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구나 만들어봤음직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이너스 통장의 주인은 따로 있다. 이 통장을 자신을 위해 쓴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통장의 돈은 백혈병 환자의 병원비로 쓰였고, 교도소에서 학업에 정진하고 있는 수감자의 학비가 되기도 했다. 출신 학교의 후배들의 학비로도 전달됐다. 이쯤 되니 그가 받는 연봉으로도 모자란단다.

왜 없는 돈까지 끌어다 쓰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힘들 때 도움이 됐던 분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취직하고 보니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보였고 하나둘씩 돕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그저 생활이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주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만큼 도움을 받았고,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주변엔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의미를 담는 일은 따로 있다. 그의 직업을 살려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단체나 기업에 컨설팅을 해 주는 일이다.

단 서너명의 활동가의 역량에 의존하는 작은 단체라도 사회공헌적인 의미가 있다면 달려간다. 주말을 반납하고 평일엔 휴가를 써가면서도 컨설팅을 해 주고 있다. 물론 무료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손사래를 친다.

"컨설팅을 하면서 현장에서 함께 공부하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컨설팅이라고 하지만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하숙비 없어 입대하다

대학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고 말았다. 외환위기 직전이었다. 아버지께서 보증을 잘 못 서신 까닭이었다.

곧 하숙비가 끊겼다. 그동안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4달째 밀린 하숙비를 갚았다. 그리고는 군 입대를 선택했다.

군생활 도중 고혈압에 심장병, 거기다 황달까지 겹쳤다. 그동안 그를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한 탓이다.

제대 후 집으로 가보니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미 친가로 거처를 옮긴 뒤였다. 학비도 없고 기거할 곳도 없었다.

교회를 찾았다. 다행히 작은 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살아야 했다. 한칸짜리 셋방에 10여명이 기거하는 곳이지만 행복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했다. 그래도 많이 부족했다. 학교앞 햄버거가게인 '영철버거'의 이영철 대표가 나섰다. 학비를 빌려줬다. 이 대표는 이런 푸근한 인심으로 이 학교 학생들의 '큰 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렇게 주변의 도움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

고영 씨는 "학교에 다니면서 주변에서 받은 도움을 절대 잊을 수 없다"며 "그때부터 서로 돕고 사는 게 습관이 됐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가게와 인연을 맺다

한 회계법인에 컨설턴트로 입사를 했다. 첫 월급 역시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몫이 됐다. 부모님께는 첫 월급을 드리지 못한 죄송함에 취직했다는 말씀도 못드렸다고 했다.

컨설턴트가 된 고 씨는 아름다운 가게와 인연을 맺게 된다. 지난 2006년부터 약 1년 반 동안 아름다운 가게의 컨설팅을 진행하게 된 것. 아름다운 가게는 기증받은 물품을 싸게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적인 기업이다.

고씨는 "지금 아름다운 가게는 자신이 컨설팅한 내용보다 훨씬 더 훌륭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누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더라도 일이 진행되도록 조직체계와 시스템이 잘 갖춰졌으며 이는 열성적인 활동가들 덕분"이라는 것.

그는 "주말이면 아름다운 가게 컨설팅에 집중했고 필요하면 휴가를 쓰고 아름다운 가게로 달려갔다"며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동북아평화연대에서 더 많이 배우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동북아평화연대'에도 컨설팅을 하게 됐다. 입소문이 난 덕분이었다.

동북아평화연대는 연해주에 있는 고려인들을 돕는 사회단체다. 고 씨가 이 단체를 처음 찾았을 때 활동가는 4명뿐이었으며 전체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는 제안서부터 여러 문서양식 등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올 설날 연휴를 이용해 연해주를 직접 방문했다.

지평선이 보이고 말들이 뛰어다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의 고려인들의 상황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콩 종자를 마련할 돈조차 없어 1년 농사를 쉴 판이었다. 고 씨는 종자 구입비에 쓰라고 2500만원을 내놓았다.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는 완전히 소진됐다.

그래도 그는 배운 것이 더 많다고 강조한다. "한번 현장에 가본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수익모델이 가능할지를 모두 보고 왔으니까요. 그리고 컨설팅에서 현장방문과 당사자들과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도 됐습니다."

사회적 인터넷쇼핑몰인 '바리의 꿈'을 제 궤도에 올리는 일에도 적극 나서게 됐다. 동북아평화연대가 연해주에서 난 콩으로 만든 청국장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비료나 농약을 쓴 적이 없어 유기농보다 우수한 자연농 식품이라고 한다.

최근 고 씨는 연해주가 말들이 뛰어노는 곳인만큼 말 농장과 승마 체험장을 만드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관광상품으로까지 개발 가능한 미래를 보고 온 셈이다.


◆의인들, 모이다

이제 고 씨는 혼자가 아니다. 주변의 컨설턴트, 회계사, 펀드운용역,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그 주변으로 모이고 있다. 이미 10여명을 헤아리고 있다.

처음에는 컨설팅을 하면서 법률이나 회계와 관련한 조언이 필요해 친구나 후배들을 불렀다.

지금은 전문가들이 모이고 있고 대학생 인턴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에 무료로 컨설팅하는 일에 의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컨설팅그룹(SCG)'이라고 이름도 지었다.

고영씨는 단순히 컨설팅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장 먼저 해당 단체의 의지와 열의를 요구한다.

"최근 한 단체에서 요청한 컨설팅을 진행하기에 앞서 매주 일요일, 아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미팅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 단체는 난색을 표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의지로 어떻게 사업을 하려느냐고 한마디 한 적도 있지요."

고 씨는 조만간 비슷한 업종의 단체들이나 기업들끼리 노하우를 공유하는 포럼을 열 계획이다. 개별 활동가나 단체의 역량은 매우 우수하지만 다른 단체와의 공유가 전혀 안된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는 꿈이 있다. 언젠가는 남북통일이 되는 그 때를 위해 하나씩 준비를 해 나가는 것. 탈북자 지원단체나 고려인 지원단체에 애착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은 실업자 지원단체에도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그 폭을 넓혀 간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머니투데이 머니위크 이재경 기자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08101412435422961&outlink=1